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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발하는 엘리후(욥32장)

[레벨:13] 관리자, 2018-02-09 08: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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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2장입니다.

 

1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2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3 또 세 친구에게 노를 발함은 그들이 능히 대답지는 못하여도 욥을 정죄함이라

4 엘리후가 그들의 나이 자기보다 많으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5 세 사람의 입에 대답이 없음을 보고 노를 발하니라

6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발언하여 가로되 나는 연소하고 당신들은 연로하므로 참고 나의 의견을 감히 진술치 못하였노라

7 내가 말하기를 날이 많은 자가 말을 낼 것이요 해가 오랜 자가 지혜를 가르칠 것이라 하였으나

8 사람의 속에는 심령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9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내 말을 들으라 나도 내 의견을 보이리라

11 내가 당신들의 말을 기다렸고 당신들이 할 말을 합당하도록 하여보는 동안에 그 변론에 내 귀를 기울였더니

12 자세히 들은즉 당신들 가운데 욥을 꺾어 그 말을 대답하는 자가 없도다

13 당신들이 혹시라도 말하기를 우리가 지혜를 깨달았었구나 그를 이길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 하지 말지니라

14 그가 내게 말을 내지 아니하였으니 나도 당신들의 말처럼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리라

15 그들이 놀라서 다시 대답하지 못하니 할 말이 없음이로구나

16 그들이 말이 없이 가만히 서서 다시 대답지 아니한즉 내가 어찌 더 기다리랴

17 나도 내 본분대로 대답하고 나도 내 의향을 보이리니

18 내게 말이 가득하고 내 심령이 나를 강박함이니라

19 보라 내 가슴은 봉한 포도주 같고 새 가죽 부대가 터지게 됨 같구나

20 내가 말을 발하여야 시원할 것이라 내 입을 열어 대답하리라

21 나는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아첨하지 아니하나니

22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자가 속히 나를 취하시리로다

 


본장에서부터 37장까지는 엘리후의 중재적인 변론입니다. 엘리후는 앞서 언급되어진 욥의 세 친구와는 별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의 변론을 모두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는 욥의 고집을 꺾지 못한 세 친구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면서 자신이 변론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욥과 그의 세 친구들은 엘리후의 변론을 일방적으로 듣게 됩니다.

 

1. 엘리후의 출현

1) 친구들의 말이 그침

욥을 위로하러 왔던 세 친구들은 욥과의 대화를 통해 그에게 고난이 찾아온 것은 욥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을 정죄했던 세 사람은 욥이 친구들의 말을 묵살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의로움을 변호하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욥의 고집에도 원인이 있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논증보다 욥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노를 발하는 엘리후

욥의 친구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자,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했습니다. 엘리후가 욥을 향하여 노를 발한 것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었습니다. 또 이어서 엘리후는 세 친구들에게도 노를 발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욥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노를 발한 엘리후는 그들을 정죄함과 동시에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전제를 은연중에 내세웠습니다.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정죄는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 권한입니다.

3) 참고 있다가 나온 분노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므로 욥에게 말하기를 참고 있다가 그들이 말하기를 그치자 입을 열었습니다. 이는 연장자가 말할 때 연소자가 겸손히 듣는 사회적인 풍습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는 바르고 정당한 말이라도 먼저 예의를 지키며 말해야 합니다. 예의에 벗어난 말은 진리라도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세 사람과 욥의 대화를 들으면서 속으로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나 예절을 지키기 위해 인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후의 이러한 마음은 그의 발언 중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참조, 32:8-19).

 

2. 욥을 꺾겠다는 엘리후

1) 총명은 하나님이 주심

엘리후의 예의 있는 태도는 그가 말하기를 먼저 하지 아니하였다가 자신이 말하기 좋은 때에 이야기를 시작하는 신중함에서 잘 나타납니다. 엘리후는 젊은 자가 연로하신 분들 앞에서 먼저 지도자적인 의견을 진술하는 것은 합당한 것이 아니라고 전제하였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필요한 때에는 연소자라도 연로자 대신으로 옳은 말을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많아도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후회하며 한탄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총명을 가진 자는 선악을 분별하는 판단력으로 실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 욥을 꺾지 못한 친구들

엘리후는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들어보니 그들 가운데 욥을 꺾을 만한 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 중에 있을 때 와서 욥의 이야기를 무시하는 말만 했습니다. 또한 욥을 이해하려는 사랑보다는 욥을 판단하고 누르는 강압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욥은 도저히 승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3) 확신하는 엘리후

엘리후는 욥의 세 친구들에게 욥을 당할 만한 자가 없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욥을 꺾을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욥은 재산과 가족을 잃었으나 그의 예리한 지성과 지식은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엘리후는 욥과 그 친구들의 변론 내용을 모두 듣고 나중에서야 변론에 나섰습니다. 엘리후가 변론하려고 했던 시기에 어떤 친구도 그의 말을 막지 않았습니다. 그는 욥에게 올바른 해답을 주어야 할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참고 있을 수 없을 만큼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3. 변론의 공정성

1) 시원할 것이라

말을 하고 싶을 때에 계속 참게 되면 말이 가득하여 쌓이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봉한 포도주가 발효되어 가죽 부대를 부풀리는 상태와 유사합니다. 엘리후는 말을 참다가 결국 말을 꺼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말을 발하여야 시원할 것이라고 하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참다가 한다고 해서 시원스러운 변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해야 합니다.

2) 편견이 없음

엘리후는 변론에 즈음하여 자신은 결코 사람의 낯을 보지 아니하며 사람에게 아첨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자신은 편견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대개 변론하는 사람들은 이기려는 목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편벽되이 주장하기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참조, 살전 2:5). 상대방이 듣기에 좋은 말만 찾아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첨에 빠지기 쉬운 대화의 자세인 것입니다.

3) 잘못을 범하면

엘리후는 만일 자신이 아첨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취하여 가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첨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곧 여호와는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는 분입니다(참조, 12:3). 아첨은 몰락을 가져오게 되고(참조, 26:28), 오해를 불러일으키며(참조, 29:5), 죽음을 초래하는(참조, 12:21-23) 파멸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많은 말을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을 의식하므로 절제된 언어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욥과 그의 세 친구들간의 논쟁이 일단락되고 엘리후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엘리후의 등장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깊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인정하고 온전히 그분만 신뢰하고 섬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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