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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에게 말하는 엘리후(욥33장)

[레벨:13] 관리자, 2018-02-10 08: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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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장입니다.

 

1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나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2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동하는구나

3 내 말이 내 마음의 정직함을 나타내고 내 입술이 아는 바를 진실히 말하리라

4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5 네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6 나와 네가 하나님 앞에서 일반이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 즉

7 내 위엄으로는 너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권세로는 너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8 네가 실로 나의 듣는데 말하였고 나는 네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9 나는 깨끗하여 죄가 없고 허물이 없으며 불의도 없거늘

10 하나님이 나를 칠 틈을 찾으시며 나를 대적으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네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네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 하나님은 모든 행하시는 것을 스스로 진술치 아니하시나니 네가 하나님과 변쟁함은 어찜이뇨

14 사람은 무관히 여겨도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의 이상 중에

16 사람의 귀를 여시고 인치듯 교훈하시나니

17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으로 칼에 멸망치 않게 하시느니라

19 혹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20 그의 마음은 식물을 싫어하고 그의 혼은 별미를 싫어하며

21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22 그의 혼이 구덩이에, 그의 생명이 멸하는 자에게 가까와지느니라

23 그럴 때에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그 정당히 행할 것을 보일진대

24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긍휼히 여기사 이르시기를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25 그런즉 그 살이 어린 아이보다 연하여져서 소년 때를 회복할 것이요

26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27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전에 범죄하여 시비를 바꾸었으나 내게 무익하였었구나

28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29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30 그 영혼을 구덩이에서 끌어 돌이키고 생명의 빛으로 그에게 비취려 하심이니라

31 욥이여 귀를 기울여 내게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32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너를 의롭게 하려 하노니 말하라

33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지혜로 너를 가르치리라

 


본장에서부터는 엘리후의 본격적인 변론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본장은 엘리후가 욥의 그릇된 변론을 수정하려고 하는데 초점을 두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욥에게 대화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우선 자신이 전개하는 말을 욥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부탁하면서 본론에 들어갑니다. 그는 욥의 주장을 하나님에 대하여 부당한 언사를 한 것을 공박하고 그것을 분석하면서 욥이 깨닫기를 촉구하였습니다.

 

1. 변론에 나서는 엘리후

1) 정직한 변론

엘리후는 먼저 욥이 자신이 하는 말을 들으며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말이 정직하고 신실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고 신실한 자의 말은 진리를 증거하며 거짓되고 어리석은 자들을 깨우치는 교훈이 됩니다.

2) 전능자의 기운

엘리후는 자신의 존재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신이 자신을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자신을 살렸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리후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고 그분의 영감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자이므로 욥에게 충고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말의 권위를 자신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있음을 역설한 것입니다.

3) 말의 기회는 공정함

엘리후는 욥에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제안하였습니다. 사실 공정한 말은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자기의 말만 일방적으로 하고 듣지 아니하려는 태도는 신앙적인 것도 아니며 또한 공정한 자세도 아닙니다. 엘리후는 자기도 욥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피조물이며 자신의 존재가 욥을 두렵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엘리후가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자신이 대화하지 않을 것임과 욥의 말도 기꺼이 듣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올바른 생각입니다.

 

2. 욥의 대답을 책망하는 엘리후

1) 욥을 책망함

엘리후는 욥이 자신에게는 죄와 허물과 불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는다는 말은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이 같은 단정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절대적인 의인이라고 주장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욥의 순결함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엘리후가 단지 겉으로 드러난 욥의 고난을 보고 욥을 판단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2) 하나님과 인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그 문제 중 다수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바람이 하나님과 변쟁할 수 없는 것은 전능자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하시는 모든 일을 인간에게 스스로 진술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변론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은 왕이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피조물인 인간이 능력과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의 행사에 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참조, 9:19-23).

3) 하나님의 교훈 방법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계시로써 아람을 교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에 별 관심이 없이 행동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이상을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 주기도 하십니다. 사실 성경이 형성되기 이전에는 이런 방식이 종종 취해졌습니다. 이는 요셉이나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선하시고 자비하신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결코 인간이 멸망하는 것을 즐기지 않으십니다.

 

3. 고난이 유익을 줌

1) 고난의 의미

꿈과 이상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나타내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전하시기도 한다고 엘리후는 말하였습니다. 그 고통이란 뼈가 늘 쑤시고, 식물을 멀리하고, 몸은 쇠약해지며, 생명이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죄악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십니다. 엘리후의 이 말은 현재 고난당하고 있는 욥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 효과를 기대하는 뜻을 가집니다. 엘리후는 계속해서 질병적인 고통을 깨닫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2) 생명으로 이끄심

하나님의 행사는 생명으로 이끄시는 섭리 안에서 베풀어집니다. 인간의 행사는 허무한 일이 적지 않지만 하나님의 행사는 보람되고 유효한 일들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은 생명을 얻은 자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됨을 경험하게 도우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룰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3) 욥을 교훈하는 엘리후

엘리후는 자신이 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교훈은 그 자체로서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교훈을 베풀었으나 그것이 올바른 교훈의 내용과 방법을 담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훈은 학자의 혀를 받아 먼저 베풀어져야 하며(참조, 50:4), 생명의 샘과 같은 시원함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참조, 13:14). 엘리후는 욥을 의롭게 하려 한다고 말함으로써 욥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태도를 가지고 교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에 대한 욥의 부당한 언사를 공박하면서 어떠한 태도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목적에 관해 설명하였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임할 때 그 고난에 대하여 부당한 언사를 표출하지 말고 고난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함으로써 그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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