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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눈물_요한복음 11:17-37

[레벨:16] 관리자, 2020-02-13 09:4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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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눈물_요한복음 11:17-37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사이코패스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타인을 동정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애통하는 사람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1.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17-27)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셨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어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지난 때였습니다. 나흘이라는 시간은 죽음을 더는 의심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함께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이제라도 주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소망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마르다의 소망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살아날 것을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장에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시며 당신이 이 땅에 부활의 소망을 가져온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밝히셨습니다. 마르다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하는데, 이는 베드로의 신앙고백(16:16)과 함께 복음서에서 표준이 되는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통해 마르다의 이 신앙고백이 진리임을 인증하십니다. 모든 성도는 이 신앙고백 안에 존재합니다. 베드로가 이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이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말씀하심같이(16:17)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세상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담대하게 증언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눈물(28-37)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이르셨을 때 마리아는 주께서 그곳에 계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마르다와 같은 말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습니다. 마리아와 함께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통했습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우는 모습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을 보고 나사로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것은 단순히 나사로와의 사적 친분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망 권세 아래 굴복하고 애통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비통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인해 애통하는 사람들의 깊은 슬픔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음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21:4)라고 선언함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묘사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인류를 긍휼히 여기셔서 생명을 내어 주시는 사랑으로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시며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12:15)라는 말씀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긍휼과 사랑의 눈물로 이웃을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타인의 아픔과 필요를 공감하고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이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듯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해 그 사랑을 베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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