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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가 지켜질 때와 버려질 때_신명기 25:1-10

[레벨:17] 관리자, 2020-05-28 07:2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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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가 지켜질 때와 버려질 때_신명기 25:1-10

 

1.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4.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5.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자존감을 품고 살아야 하고, 어떤 사람이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무너질 때 우리 사회는 완악한 세상이 되고 맙니다.

 

1. 처벌받는 자도 빼앗기지 않는 명예

구약시대 이스라엘에는 현대와 같은 구금, 징역형은 없었고, 잘못의 정도에 따라 태형을 집행했습니다. 태형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는 아니고, 재물로 배상할 수도 없는 잘못에 대해 선고되는 형벌이었습니다. 사실 태형은 처벌을 받는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굴욕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죄가 태형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판장이 개입해야 했고, 또 재판장은 그 잘못의 경중을 따져 때릴 횟수를 정해 주는데, 40대를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는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는 형벌을 당한다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명예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이 원리가 곡식을 떠는 소에게 비유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소에게 날카로운 돌조각이 박힌 넓적한 도리깨를 끌게 해 곡식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소를 그냥 두면 당연히 도리깨를 끌지 않고 가만히 서서 곡식을 먹기만 할 것이니, 주인은 소에게 가벼운 매질을 해서 계속 움직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주인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면 안 되는데, 이는 아무리 진성이라도 매를 맞으면서 곡식을 떨고 있으니 조금씩이라도 곡식을 먹는 것을 허용해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짐승에게도 배려를 하는데, 사람을 매질할 때 그 존엄성까지 훼손될 정도로 굴욕을 주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히 처벌해야겠지만, 죄를 짓고 잘못을 범한 사람이라 해도 인간의 존엄성까지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2. 의무를 거부한 자가 받을 불명예

현대인들에게는 좀 의아한 법이지만,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에서는 형이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아들을 낳게 하고, 첫아들을 죽은 형의 아들로 삼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는 형수가 과부로 혼자 살아가지 않게 하고, 형의 기업이 끊기지 않게 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동생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결혼한 상태라면 가정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었고, 또 형수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적 문제가 있었기에 동생은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기를 거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럴 경우 형수는 성문에 모인 장로들에게 가서 죽은 남편의 동생이 자기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거부한다는 사실을 알렸고, 장로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끝끝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기를 거부하면, 형수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어 모욕을 주었고, 그 집은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손해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죽은 형의 집을 일으키는 일은 이렇듯 강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외면했을 때 불명예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돕고 회복시키는 일은 명예로운 일인 반면에 도울 수 있음에도 돕지 않은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입니다.

 

태형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최소한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규정과 형제의 곤경을 돕지 않는 자에게 불명예를 씌우라는 규정은 명예로운 삶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를 소유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불명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베풀기에 힘써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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