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써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오늘 본문은 흔히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13장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 사랑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은사를 사용한다는 의미를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할 방언의 은사(1절)
고린도 교회에는 꽤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은사들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13장). 그렇기에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고 사용할 때는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특히 방언의 은사는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이었습니다. 병을 고치거나 능력을 행하는 것도 신비한 은사였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면서도 신비하게 느껴진 은사는 방언이었습니다. 아마 많은 성도가 방언의 은사를 사용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여러 성도가 그 은사를 받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또한 방언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은 이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자랑이 지나치면 영적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은사를 사랑으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오히려 그 은사는 덕을 세우기보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예언의 은사(2~5, 12절)
바울은 사랑으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방언과 예언을 비교합니다. 은사를 사용하는 이유와 목적은 덕을 세우기 위함입니다(5절). ‘세우다’로 번역된 원어의 의미는 집을 든든히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4, 12절). 따라서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고 오히려 허물고 무너뜨린다면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방언은 하나님을 향해 사용되는 은사인 반면(2절), 예언의 방향은 그 반대입니다. 즉 하나님이 교회 공동체에 말씀하실 땐 예언의 은사가 필요합니다(3절). 방언은 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사용되므로 개인에게는 영적으로 유익하지만,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다면 예언이 더 낫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공동체에 선포하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로 개인의 욕심을 채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만을 위해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개인에게도, 나아가 교회에도 전혀 유익하지 않습니다.
분명하게 드러나야 할 은사의 유익(6~11절)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방언이 예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익이 적다고 말합니다(6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여러 은사 중 방언을 꽤 우월하다고 여긴 듯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개인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통역 없는 방언은 교회 공동체에 큰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는 것은 마치 허공에다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개인에게는 영적으로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통역 없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오히려 혼란을 주기 쉽습니다(11절). 모든 은사는 다른 사람들과 교회 공동체에 분명한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여러 은사가 풍성한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기억할 것은, 특정 은사가 다른 은사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방언 역시 다른 은사들보다 더 우월하지 않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가 많습니다. 개인의 영적 유익을 위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자랑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은사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