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포기가 신앙이다_고린도전서 9:1-12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우상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한 논리적 대답은 8장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 긴 부연 설명을 덧붙였습니다(9:1〜10:22). 그만큼 이는 고린도 교회에 큰 문제였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잘못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 바른 지식을 가진 이들이 싸고 질 좋은 고기를 먹지 못하는데 반발심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약한 자들을 배려해 자유를 포기하는 행동은 신앙의 본질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포기하는 모범(1~7절)

이 부분은 언뜻 보면 논지 이탈처럼 보이지만, 이는 ‘왜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포기해야 하느냐?’라고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범을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즉 ‘너희는 그깟 값싼 고기를 먹을 권리를 주장하느냐, 나는 그보다 훨씬 더 큰 권리를 포기하며 사역하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천막을 만드는 일로 생업을 이어 나갔습니다(행 18장). 복음 사역자는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기에 다른 사도들은 이 권리를 행사했습니다(1〜2절).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들이 자신을 당시 소피스트들과 같이 지식이나 종교를 전파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은 자로 여기지 못하게 하려고 생활비 받기를 포기했습니다. 다른 사도들은 배우자까지 데리고 다니며 순회 사역을 하면서 생활비를 받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4〜6절). 바울도 얼마든지 사도로서 대우받으며 말씀을 전하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7절). 하지만 바울은 1년 반 정도 사역한 후, 교회가 자기 생활을 지원해 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자 오히려 고린도를 떠났습니다(행 18:11). 이처럼 바울은 철저히 복음을 위해 자신의 유익을 포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본받는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율법의 근거에도 불구하고(8〜12절)

우상 제물에 관해 지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신 6:4; 마 15:11)는 말씀을 근거로 그것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아무런 영적 해악이 없는 값싸고 질 좋은 고기를 왜 먹지 않느냐, 예수님도 음식과 신앙은 관계가 없다고 가르치셨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없듯이, 복음 사역자가 교회로부터 생활비를 받는 것이 신학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8〜10절; 신 25:4) 그 권리를 포기했음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그렇게 선택한 이유는 사도가 생활비를 받는 것을 보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복음 사역자들이 생계를 위해 사역한다고 오해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1〜12절). 바울은 질문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이 오해할까 봐 생활비를 포기한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그깟 값싼 고기조차 포기할 수 없느냐?’ 바울이 이런 모범을 보이지 않았다면 성도들에게 이런 가르침을 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은 타인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작은 권리 정도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먼저 다른 지체들의 믿음을 살피고,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리를 포기하는 삶이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주님을 본받으면 우리는 작은 권리들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다른 지체들의 믿음이 나의 권리나 자유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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