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종말, 곧 주님의 재림이나 내 생명이 끝나는 날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안일하게 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급한 문제로 여기지 않고, 또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가는 어제 본문에 이어서 종말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다(1~3절)
당시 갈릴리에는 로마에 반란을 도모하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아마도 1절의 ‘어떤 갈릴리 사람들’은 반란을 도모하는 자들이었는데,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릴 때 로마군대가 성전 안까지 들어올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자기들의 정체를 드러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총독 빌라도는 성전 안까지 군인들을 들여보내 그들을 체포하여 죽였던 것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전체가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무모한 짓이지만, 빌라도는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예로 드시며 죽음은 의인과 악인을 가리며 찾아오지 않기에 회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2~3절). 실로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매 순간 회개하며 삶을 바르게 세워 나가야 합니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4~5절)
예루살렘의 실로암 못에 있던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유사한 사고들을 접하면, 우리는 인생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예로 드시며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그런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하십니다(4절). 만약 우리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는 언제라도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실로 종말은 도둑과 같이 예고 없이 옵니다. 현대에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람들이 죽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날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당장 주님 앞에 서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회개함으로 삶을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6~9절)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는 인간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이 비유는 세례 요한의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3:9)는 예언을 연상 시깁니다. 지금 당장 찍혀 버려져도 마땅한 나무가 포도원 지기, 곧 주님의 긍휼하심 덕분에 겨우 연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해도 아무런 항변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 즉시 회개해야 하고, 해야 할 선한 일이 생각나면 즉시 실행해야 합니다. 이를 차일피일 미루는 것은 결국 자기 목숨을 재촉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좀 더 우리 인생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죽음을 현재화하여 지금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진정한 지혜란 언젠가 주님이 내 삶의 무게를 저울로 달아보실 것을 기억하며 혹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겠다는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