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가?_누가복음 8:19-25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22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23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24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25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신앙 성숙이란 곧 예수님을 닮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수님을 가까이하고 그분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과연 주님과 진정으로 동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며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본문은 우리를 영적인 교만에 빠뜨리는 두 가지 함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근거한 가까움(19~21절)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부모와 형제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가족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이들은 그 어느 민족보다 족보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이며, 혈통이 자신의 정체성에 절대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늘 집안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경우에는 이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큰 무리에 둘러싸여 계실 때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19〜20절). 보통의 경우에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가족이라면 당연히 우선권이 주어지게 마련이고, 가장 가까운 자리가 보장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 어머니와 동생들, 곧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이는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데 혈통과 같은 조건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가족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를 차지할 때 우선권을 누리지 못했다면, 유대인이라고 해서 예수님과 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몇 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집안에 목사가 몇 명이고 장로가 몇 명이다 등은 우리가 예수님과 가까워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물리적 위치에 근거한 가까움(22~25절)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는 이야기는 요나의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참조, 요나 1장).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신 후에 마치 요나처럼 그 배에서 주무시는데, 바로 그때 호수에 광풍이 내리치고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합니다(22〜23절). 제자들은 풍랑이 두려워 예수님을 깨웠는데(24a절), 이는 요나서에서 배의 선장이 요나를 깨운 것을 연상시킵니다(참조, 욘 1:6). 이는 제자들이 유대인이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작 풍랑 앞에서는 두려워하는 이방인과 별 다를 바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두려워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곧 깨셔서 바람과 물결을 잠잠하게 하시고는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질책하십니다(24〜25절). 예수님과 같은 배를 타고 있는데도 믿음이 없다는 질책을 받은 것입니다. 게다가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보고는 놀라서 “그가 누구이기에”라며 얼이 빠진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다고 해서, 예수님과 한배를 탔다고 해서 합당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예배당을 오간다는 이유로 주님을 가까이 모시고 있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긍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주님이 베푸신 구원과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영적 교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진정한 믿음이 있는지를 늘 점검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원의 확신’과‘영적 교만’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는 모태 신앙이니까, 나는 주일 성수하니까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고, 어떤 위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때에야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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