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22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23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 책에 씌어졌으면,
24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노라
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6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7 내가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조하구나
28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까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29 너희는 칼을 두려워 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장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욥은 자신을 저주하고 비난하는 친구들의 말에 너무도 힘들어합니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 욥은 자신을 위해 조금이라도 고통을 나누어 줄 대속자를 기다립니다.
불쌍히 여김을 바라는 욥(21〜22절)
자신을 향해 비난과 회개를 강요하는 친구들에게 욥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현실 앞에서 욥은 친구들이라도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군림하여 욥을 더 정죄하고 조롱했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의 율법과 신약 시대의 새 계명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강조합니다(레 19:18; 신 6:5; 마 22:37-40).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내세우면서도 욥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의는 거짓입니다. 자신이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낫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폄하하는 것만큼 교만한 모습은 없습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십니다. 성경은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는 이들을 꾸짖고 있습니다(약 4:12).
나의 대속자는 어디에(23~27절)
보통 죄인들은 자신들이 한 말이나 행동을 숨기려고 합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모든 죄악을 덮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의 말들이 기록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단순히 남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필과 납으로 영원히 돌에 새겨지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욥이 자신의 결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청한 후에 자신의 무죄을 주장하면서 자신을 위한 대속자를 찾았습니다. ‘대속자’(25절)의 역할은 레위기 25:47-55에 나오는‘고엘’과 비슷합니다. 욥은 자신을 고난 가운데서 건져줄 대속자, 즉 고엘을 구하고 있습니다. 고엘 제도는 빚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구원해 주는 제도입니다. 욥은 무능한 자신을 도와줄 대속자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결백을 인정받기를 희망했습니다. 대속자로 인해 하나님 앞에 서기를 기대했습니다. 죄인이 구원을 얻는 방법은 욥이 바랐던 것처럼 대속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자를 대신하여 빚을 갚아주는 대속자만이 죄인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대속자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을 향한 경고(28~29절)
대속자를 기다리는 욥은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친구들에게 경고합니다. 욥과 친구들의 감정이 극도로 대립하고 있는 것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욥은 자신을 공격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모든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그들에게 몸서리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욥은 친구들을 저주했습니다. 사람은 대속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에 주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대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죽음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에게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 성도는 지금 욥이 친구들에게 말하는 경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대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인 우리의 마땅한 본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