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삶_누가복음 21:25-38

25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26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27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28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그리스도인은 마지막을 바라보며 인생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입니다. 이는 현재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만, 인생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언제라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자가 참된 지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시며 제자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날은 승리의 날이다(25~28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마 24:29〜31; 막 13:24〜27). 그런데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마태, 마가와 달리, 누가는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에 집중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날에 모두 두려움에 붙잡힐 것입니다(25〜26절).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앞에서 머리를 들고 속량을 기대할 것입니다(27〜28절). 따라서 마지막 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의 날이 아니라 소망의 날입니다. 이는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가르침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파괴되는 날은 결코 고통의 날이 아니라 소망의 날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박해했던 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겠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향해 담대히 머리를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마지막 때는 제자들에게 승리의 날입니다.

징조를 분별하라(29〜33절)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고 하십니다. 모든 나무가 봄을 알리는 역할을 하지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별도로 언급하신 이유는 무화과나무가 솔로몬의 풍요와 성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29~30절; 참조, 왕상 4:25). 예수님은 우리가 나무의 변화를 보고 계절을 아는 것처럼, 당신이 말씀하신 여러 징조를 보고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31절). 물론 그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에 잎이 나면 여름이 오는 것이 분명하듯, 주님이 말씀하신 징조들이 나타나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고, 천지가 없어질 그 날이 임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32〜33절). 우리는 주님이 약속하신 재림을 기다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34~38절)

재림을 기다리는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이 도출됩니다. 제자들이 안일하고 방탕하게 살면서 ‘생활의 염려’즉 당장 눈앞에 닥친 일에 붙잡혀 살다 보면 재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34〜35절). 자신의 마지막, 곧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남은 날을 허비하지 않고, 당장의 작은 이익이나 손해에 일희일비하지 않듯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도 가장 중요한 것, 바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기 위해 정신을 집중합니다(36절). 누가는 예수님이 낮에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 감람원이라는 산에서 쉬셨다고 말합니다(37절). 예수님은 감람원에서 쉬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주한 사역 가운데서도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는 모습을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마지막 때를 승리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인 삶을 삽니다. 비록 세상에 발을 딛고 세상의 일을 하면서 살지만, 그 자체는 영원하지 않고 궁극적 소망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미련을 두지 말고 떠나야 했듯이, 우리도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영원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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