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권면이 이어집니다. 이 권면은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복음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8~12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 능력과 사랑과 절제라는 사실에 근거하여(7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실제적 태도를 권면합니다. 첫째는 복음 때문에 옥에 갇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수감된 이유가 복음 때문이었기에 바울은 오히려 그것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복음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 1:16). 바울은 바로 이 복음을 선포하는 자요 보냄을 받은 사도이자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11절).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삶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결정됩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복음으로 인해 겪을 고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가졌던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은 그를 고난의 자리까지 주저 없이 나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과 함께 놀라운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가 지켜야 할 것(13~14절)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는 권면의 구체적 기준을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바른말을 본받아 지켜야 합니다. 둘째, 아름다운 것을 지켜야 합니다. ‘바른말’은 복음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말합니다. 이단들의 거짓 복음을 따라 살지 말고,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지라도 바른 복음을 따라 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사도적 가르침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따라 디모데에게 부탁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역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의 이 부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는 복음에 관한 바른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역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복음을 맡기신 주님께 아름다운 일입니다.
부겔로, 허모게네, 오네시보로(15〜18절)
디모데에게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권면했던 바울은, 실제로 고난 가운데 있는 자신을 도운 오네시보로라는 인물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아시아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바울이 로마에 있는 감옥에 투옥되자 그를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복음으로 인해 고난받는 바울을 부끄러워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부겔로와 허모게네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이유는, 고난이 두려워 복음의 자리를 떠난 사례를 실감나게 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반면 오네시보로처럼 상반된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자신을 격려하고, 자신이 복음으로 인해 사슬에 매인 사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집을 축복하고, 그의 삶이 긍휼히 여김을 받도록 기도했습니다. 세 사람의 출발선은 같았지만, 결승점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복음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고난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감내하시길 축원합니다.
성경은 복음이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이라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따르는 삶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난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그 삶을 반드시 선한 결과로 보상해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시길 바랍니다. 그 확신으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