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
2 욥이 입을 열어 이르되
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4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
5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그 날을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였더라면, 구름이 그 위에 덮였더라면, 흑암이 그 날을 덮었더라면,
6 그 밤이 캄캄한 어둠에 잡혔더라면, 해의 날 수와 달의 수에 들지 않았더라면,
7 그 밤에 자식을 배지 못하였더라면, 그 밤에 즐거운 소리가 나지 않았더라면,
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9 그 밤에 새벽 별들이 어두웠더라면, 그 밤이 광명을 바랄지라도 얻지 못하며 동틈을 보지 못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을,
10 이는 내 모태의 문을 닫지 아니하여 내 눈으로 환난을 보게 하였음이로구나
욥의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욥은 지금까지 견뎌 왔던 고통과는 또 다른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비참한 상황을 보이는 것이 어쩌면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욥이 친구들 앞에서 입을 열었습니다.
저주받은 생일(1-2절)
욥은 분명히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죄를 짓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말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자신의 슬픔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위로해 줄 것을 믿고 그들 앞에서 슬픔을 토로한 것인지 모릅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모든 출생은 축하받을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하는 삶의 무게와 고통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출생을 복되다고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도서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이 비록 백 명의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의 영혼은 그러한 행복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또 그가 안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그보다는 낫다 하나니 낙태된 자는 헛되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의 이름이 어둠에 덮이니 햇빛도 보지 못하고 또 그것을 알지도 못하나 이가 그보다 더 평안함이라”(전 6:3-5), 욥의 탄식은 그저 욥 개인의 탄식이 아닙니다. 죄 아래서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모든 인간의 탄식입니다.
생일이 없었더라면(3-10절)
욥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의 고통 앞에서 모든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그는 ‘내가 태어난 날이 없었다면’하고 바랍니다. 가장 기쁜 순간조차 지금 그에게는 없었더라면 좋았을 시간입니다. 그래서 욥은 부모들이 자신을 잉태한 밤도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 밤 역시 저주스러운 시간인 것입니다. 해마다 생일을 축하하는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일은 죄인의 마지막을 일깨우는 시간임이 틀림없습니다.
욥은 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일반 은총마저 외면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모든 은혜조차 죄인 된 인생에게는 고통일 뿐이라는 탄식을 내뱉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쉽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고통 앞에서, 삶의 본질적 질문 앞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욥은 고난 앞에서 인간의 날들이 어둠, 구름, 흑암, 캄캄한 어둠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욥의 절규는 친구들 앞에서 점점 더 격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진 밤, 출생한 날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그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었던 어머니마저 탄식과 원망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욥은 이제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욥도 분명히 고통 앞에서 신음하는 인간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크게 겪은 사람입니다.
가끔 성도들은 믿음이 삶의 고통이나 아픔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성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고통을 느끼며 고통 앞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고통 앞에서 더욱 힘들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을 향해 울며 기도하십시오. 성도의 탄식과 절망은 반드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