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유대교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고, 유대교를 대체하는 교회는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13:10〜14:35)를 설명한 누가는 이제 제자도에 대한 가르침을 마무리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종교적 장벽(15장)과 경제적 장벽(16장)이 무너져야 함을 가르치셨다고 전합니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1~2절)
‘세리와 죄인’(1절)은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여겨진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동물의 시신을 만질 수밖에 없는 도축업자, 가죽 가공업자 등도 포함됩니다. 사실상 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이러한 세리와 죄인들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면 짓밟힐 수밖에 없기에, 어떤 면에서 유대 사회의 안정을 책임지는 이는 세리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도축업자에게서 고기를 사고, 가죽 제품을 사서 사용하면서도, 즉 세리와 죄인들로 인해 안전하고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천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어울리기를 꺼리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런 예수님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2절).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의 위선적 태도와 결별하시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주변인들과 교제하시며 함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백 명 중 죄인 한 사람(3~7명)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눈에 세리와 죄인들은 사실상 투명 인간과 같은 존재요, 사회에서 소수, 즉 ‘1’에 속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하나쯤은 없어져도 그만이라고 느낄만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자라면 양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어떻게든 찾아다닌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4절). 그리고 잃은 양을 찾으면 벗과 이웃을 모아 함께 즐거워한다고 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드러내십니다(5〜6절).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이 남들보다 더 의롭다고 하시지는 않습니다. 회개할 것이 없다고 느끼는 99인보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기 원하는 1인을 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7절). 이어지는 비유에서는 1:99가 1:9로, 그리고 1:1로 잃어버린 사람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길을 따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크게 보시고 중시하시는 대상을 크고 중요하게 보는 시야를 갖추어야 합니다.
열 명 중 죄인 한 사람(8~10절)
사실 드라크마 비유는 그 비중이 1:9로 커진 것 외에는 잃은 양 비유와 메시지가 일치합니다. 드라크마는 헬라(그리스)의 화폐 단위로, 로마의 데나리온과 비슷한 가치를 지닙니다. 노동자의 하루 일당 정도의 가치입니다. 하지만 여인들의 드라크마는 결혼할 때 받는 예물과 같은 것이어서 더 큰 중요성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드라크마를 부지런히 찾았고(8절) 마침내 찾아내어 벗과 이웃을 모아 잔치를 할 정도로 기뻐했던 것입니다(9절). 이를 통해 예수님은 그 잃은 자들, 즉 세리와 죄인들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아님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눈에는 그들의 삶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해 눈을 돌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삶 가운데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시선은 지금도 잃어버린 한 영혼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실 때 크게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어느 때에 크게 기뻐합니까? 주님의 마음을 품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