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을 따르고 있는가_누가복음 6:1-11

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이스라엘에서는 치즈버거를 사 먹을 수 없습니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23:19; 34:26; 신 14:21)는 계명 때문입니다. 사실 이 계명은 가축이라도 잔인하게 대하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이 때문에 무조건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지 못하고, 치즈버거가 불법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율법 해석이 예수님 시대에도 유대인들의 삶을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의 본질(1~5절)

안식일 규정은 그 특성상 눈에 잘 띕니다. 회당 예배에 참석하는지, 일터에 나가지 않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경건한 사람이 존경을 받다 보니 경쟁적으로 ‘더 경건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일 규정이 더 세밀해지고, 그 규정들을 일일이 지키는 사람이 더 경건한 사람으로 존경받고, 궁극적으로는 권세를 행사하기까지 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즉시 비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1〜2절). 이는 남의 곡식을 허락 없이 먹었다는 비난이 아니라(참조, 신 23:24〜25), 안식일에 추수했다는 비난입니다. 지나가다가 이삭 조금 잘라 먹은 것이 추수라고 하니, 치즈버거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던 일화를 들어 반박하십니다(3〜4절: 참조, 삼상 21:1〜6). 현대로 비유하자면 성찬식 후에 남은 빵을 배고픈 불신자들에게 준 것과 같습니다. 성소의 빵이라도 배고픈 사람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데, 기껏 밀밭에서 이삭을 따서 비벼 먹었다고 율법을 어긴 것이 될 수 없음은 명백한 일입니다. 신앙인은 본질을 붙잡아야 합니다. 껍데기를 붙잡고 있으면 이런 어이없고 추한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본질은 선을 행하는 것(6~11절)

안식일 규정은 사람에게 휴식을 줌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이를 오히려 사람을 잡는 규례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이미 이전에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으셨던 사건을 알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회당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고발할 증거를 찾고자 했습니다(6〜7절; 참조, 4:31〜35). 즉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손에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단지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공격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가운데 세우신 후 공개적인 질문을 하십니다(8〜9절). 안식일에 선을 행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다는 것은 누구라도 대답할 수 있는 쉬운 문제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그 원칙을 따라 그 사람을 치료해 주셨습니다(10절).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분노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어떻게 대적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습니다(11절). 그들에게 율법은 더 이상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아니라 죽이는 도구였습니다. 만약 교회에서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면, 정말 아무 소망이 없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 가운데 이런 생각이나 태도가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경건을 가장한 파괴적 종교 행위는 지금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생명을 존중하고 자유를 보호하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목적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우리 교회에는 이런 무의미한 종교 행위가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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