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 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 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 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5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6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7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8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9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11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13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14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엘리후는 자신이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다른 차원의 지혜를 드러낼 것처럼 말을 시작했으나, 사실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을 늘어놓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심각한 오해까지 드러냈습니다. 네 번째 주장(36~37장)을 시작하는 엘리후의 모습을 보며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더라도 인간이 가진 지혜는 새로울 수 없다. 결국 해 아래 새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의 증거(1〜4절)
엘리후와 세 친구들의 차이점은 엘리후가 자신의 말만 계속 어어 간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말에 대답하려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계속 자기 말만 이어갔습니다(2절). 이처럼 다른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 자체가 엘리후에게 지혜가 없음을 드러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식을 먼 곳에서 얻었다며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고, 자기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자기를 가리켜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라고까지 지칭합니다(3〜4절). 이는 모두 엘리후라는 젊은이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욥과 세 친구들은 엘리후의 말을 들으며 어이없어 쓴웃음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엘리후처럼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고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태도는 그 자체가 자신이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똑같은 주장(5〜15절)
엘리후는 앞서 욥의 세 친구들과는 다른, 특별한 지혜를 가르치겠다고 말을 시작했지만, 실상은 친구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습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자신의 이전 주장과 모순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은 인간이 의롭든 악하든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12~13절).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악인들을 벌하시고 고난받는 의인들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들을 지키시고 높이신다고 주장합니다(6~7절).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는 그 악행과 교만을 깨닫고 돌이키도록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욥의 세 친구들의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8〜10절). 게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형통하고, 그러지 않으면 지식 없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을 깎아내리는 비난까지 서슴지 않은 것입니다. 이는 엘리바스가 한 말이기도 합니다(11〜12절; 15:34). 엘리후는 욥을 경건하지 않은 자로 규정하면서, 일찍 죽는 남창과 같은 자로 취급당하리라는 저주까지 퍼붓고 있습니다(13~14절). 물론 엘리후는 나름대로 욥을 위해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의 의도는 욥이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여 곤고함과 학대에서 벗어나도록 가르치려는 것이었습니다(15절). 하지만 아무 지혜도 없으면서 스스로 지혜롭게 생각하는 자가 늘어놓는 진부한 주장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사실 엘리후의 말은 젊은이의 치기(雅氣)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처럼, 내가 마치 온 세상을 구원할 새로운 지식을 가진 듯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지식이 옛 지식을 와해시키고, 새로운 질서와 상식으로 세상이 재편성되는 것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 해 아래에 새것은 없다는 전도자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전 1:9).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바뀌고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