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15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16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17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18 하나님은 그의 종이라도 그대로 믿지 아니하시며 그의 천사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 앞에서라도 무너질 자이겠느냐
20 아침과 저녁 사이에 부스러져 가루가 되며 영원히 사라지되 기억하는 자가 없으리라
21 장막 줄이 그들에게서 뽑히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은 지혜가 없이 죽느니라
엘리바스는 자신이 경험했던 신비한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이 이야기를 들려준 이유는, 악인들은 벌을 받고 의인들은 형통하게 된다는 자신의 생각이 틀림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바스의 꿈과 영의 등장(12-16절)
엘리바스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엘리바스가 꿈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자신의 주장에 신적 권위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자신의 주장은 한낱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꿈속에서 본 영적 존재가 전해 준 신빙성 있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영적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성경 속에서 꿈과 환상은 종종 하나님의 계시가 전달되는 통로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그 꿈과 환상이 항상 바르게 해석되고 적용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꿈과 환상이 가져다주는 난해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 당시 애굽의 바로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바르게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꿈을 바르게 풀이한 것은 요셉이었습니다. 다니엘 당시에도 왕들이 꿈과 환상을 보았지만, 다니엘만이 그것을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꿈과 환상을 사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바르게 계시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의 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꿈과 환상을 갈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답을 주셨습니다.
엘리바스의 잘못된 해석(17-21절)
엘리바스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음성을 듣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서 깨끗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택하신 종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천사조차 부족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바스는 그 음성을 지금의 욥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욥이 아무리 잘나고 의롭다고 한들 흙집에 살며 하루살이보다 덧없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죄인인 욥의 인생이 비극을 맞이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설명입니다.
엘리바스는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의롭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완전하시다는 음성을 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욥이 고난을 당한 지금 상황에서, 욥이 죄인이기에 당연한 일을 겪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적용한 경우입니다. 분명히 하나님만이 의로우시므로 욥도 죄인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욥이 당하고 있는 특수한 고난을 이 같은 일반논리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누구나 죄인이기에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엘리바스는 특별히 큰 고난을 당한 욥을 위해 중보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습니다. 또한, 엘리바스의 인생론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간과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 은혜로 모든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죄를 짓지 않아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기에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이 욥에게 고난을 내리신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말로 욥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언행은 반드시 경계해야 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한 사람은 상대의 잘잘못을 분석하기보다 그 아픔을 헤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