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9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장에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이전까지는 유대의 총독인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를 중심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내용을 기록했다면 7장부터는 에스라의 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외형과 제사라는 의식을 갖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치시려고 에스라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말씀의 사람 에스라(1~6절)
1〜5절은 족보를 열거하면서 에스라를 소개합니다. 에스라라는 인물의 중요도를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자손입니다. 제사장 가문의 정통성이 강조된 이유는 에스라의 사역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또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라고 소개됩니다(6절). 율법에 익숙하다는 말은 단지 율법 지식을 잘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을 준행하는 데에도 능숙했음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기나긴 포로 생활 속에서 율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이 에스라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에스라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에게도 총애받는 자였습니다. 에스라가 총명하고 성실했기에 왕의 총애를 받았겠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그러한 위치에 있었던 것입니다(6절). 이러한 에스라의 면면을 볼 때, 하나님이 그를 통해 무슨 일을 하실지 기대하게 됩니다. 말씀의 부흥이 곧 예배의 부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의 삶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생명력 있는 거룩한 삶이 유지됩니다.
에스라의 사역에 함께할 자들의 귀환(7~9절)
에스라는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2차 포로 귀환자들은 약 1,754명이었는데(8장), 오늘 본문에는 성전에서 섬기는 역할을 할 사람들만 먼저 열거되어 있습니다. 1차 귀환의 목표가 성전 건축이었다면, 2차 귀환의 목표는 신앙 개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전히 바벨론 땅에서 살았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돌아가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이들은 약 4개월 정도에 걸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이동했습니다(9절). 이렇게 예루살렘까지 이동하는 여정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다고 언급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기 어렵습니다.
말씀을 가르치기로 결심한 에스라(10절)
에스라는 말씀을 연구했고 준행했습니다. 그는 머리와 마음과 몸이 함께 움직이는 자였습니다. 에스라는 율법을 연구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또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결심이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각성시키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성전은 건축되었고, 제사도 행해지고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고 여긴 결과입니다. 이처럼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행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외형을 아무리 잘 갖추어도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껍데기만 남을 뿐입니다. 화려한 성전, 예배 형식으로는 신앙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혹시 습관적인 예배 의식, 겉치레뿐인 봉사에 익숙해져 있습니까? 외형은 갖추었지만 말씀은 없는, 그래서 온전한 예배와 섬김은 사라진 종교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을 돌아보고 말씀으로 돌아가야 진정한 신앙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