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태도에 예수님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지적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외식적 신앙을 제자들이 본받지 않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41~44절)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을 로마 제국의 속박에서 건져 내 다윗 시대처럼 부흥시킬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호칭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자라고 여긴 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음을 천명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불렀으므로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일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아주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민족만의 구원자가 아니십니다. 온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 주신 구세주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이스라엘 민족에 국한된 구원자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이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편협한 시각, 왜곡된 신앙(45~47절)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듣고 있는 상황에서 외식하는 서기관들을 공개적으로 책망하며 그들을 경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외양에 치중했습니다. 그럴듯한 복장을 갖추어 위엄을 보이려고 애썼고, 어떤 모임에 참석할 때면 윗자리에 앉아 특별대우를 받으며 권위를 은근히 과시했습니다(46절). 과부를 위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전 재산을 교묘하게 착복하기도 했습니다. 기도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눈에 잘 띄는 곳에 서서 길게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47절).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을 쓰면 하나님의 말씀과 진정한 기도에는 마음을 쏟지 않게 됩니다. 즉 본질에는 무관심하고, 비본질적인 부분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보여 준 현실이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과 얼마나 다른지 돌아봅시다. 예수님은 여전히 이러한 외식적 행위, 가식적 신앙생활을 경고하고 계십니다.
외식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은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음을 방증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왜곡된 신앙을 갖게 됩니다. 알맹이가 빠진 종교의식을 예수님은 강하게 비판하십니다. 제사장도, 서기관도, 목숨을 걸고 율법을 지키겠다는 바리새인도 있었지만 유대 사회에는 진정한 예배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해석도, 말씀을 온전히 따르려는 순종의 태도도 없었습니다. 외적으로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지만 속이 텅 빈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얼마나 다를까요? 예수님은 지금도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시고 엄중한 심판을 경고하고 계실 것입니다. 편협한 신앙관에서 벗어나 왜곡된 신앙을 바로 잡으십시오.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수박 겉핥기 하듯이 표면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즉 진짜 신앙은 없고 가짜 신앙만 유지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예배하고 봉사하는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어야 합니다. 진짜 신앙,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서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