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본문에서 욥이 하나님과 변론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인정하며 탄식하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들으시든 안 들으시든 계속 하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은 마치 하나님께 따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탄식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어조를 통해 그가 얼마나 깊이 주님과 교제했던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말을 걸다(1-2절)
욥의 신앙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것은 아니었습니다. 욥은 고통 중에서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꾸밈없이 그저 불평하고, 괴로움을 말하겠다는 욥의 태도는 지금껏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가깝게 느끼고 있었던가를 방증합니다(1절). 욥은 ‘나를 정죄하지 마시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대체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려 달라고 요구합니다(2절). 욥은 하나님이 지금껏 자신을 사랑하셨고, 의인으로 인정하셨음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껏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었기에 하나님께 거리낌 없이 나아가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이처럼 주님과 가깝게 교제하고 있던 사람은 하나님께 위로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묻다(3-6절)
욥은 마치 하나님께 따지듯이 질문하고 있습니다. 첫째 질문은 하나님은 자기 피조물을 학대하고 멸시하시며 악인이 더 지혜롭게 되기를 좋아하시냐는 것입니다(3절). 둘째 질문은 하나님이 사람처럼 왜곡된 시야를 갖고 있으시냐는 질문입니다(4절). 셋째 질문은 하나님이 욥의 잘못을 찾아내기 위한 시간적 압박을 받으시냐는 질문입니다(5-6절). 즉 하나님도 사람처럼 시간제한 때문에 바쁘셔서 자신을 이렇게 급하게 다그치시냐는 것입니다. 사실 욥은 답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마치 악하고 유한한 인간처럼 행동하신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답지 않으니 당장 멈춰 달리고 요구한 것입니다. 욥이 주제넘은 말을 한 것 같지만, 사실 욥은 그만큼 하나님을 친밀히 느끼고 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다(7-12절)
이제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알고 있었던 가가 드러납니다. 욥은 먼저 주님은 자신을 악하게 여기지 않으시며(7a절), 자신은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7b-8a절). 이런 확신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지식을 근거로 합니다. 그러나 욥은 또한 자신을 만드시고 가까이 두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멸하려 하시고 흩어지게 하신다고 말합니다(8b-9절). 욥은 하나님이 창조의 권능을 발휘하셔서 흙을 뭉치는 것같이, 우유를 엉기게 하여 버터를 만드는 것같이 자기 육체를 만드셨고(9-10절), 생명과 은혜로 영을 지켜 주셨다고 고백합니다(11-12절). 이는 지금 하나님이 자기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과 걸맞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신실하심, 그리고 자신을 잘 아시는 분임을 알고 있었기에 이처럼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욥은 최악의 상황에 빠졌음에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지 않고 결국은 회복되고 갑절의 은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전부터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욥은 ‘하나님을 욕하고 죽는(2:9)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능력입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나 괴로울 때나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