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 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 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 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 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 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 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 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 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 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 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 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 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진화론자들은 동물들의 생태를 보면 이 세상이 완전한 신의 작품이라기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지적이 있기 이전에 욥기가 이미 그 허점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은 앞에서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재앙을 당했으므로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에 허점과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원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하십니다.
길들일 수 없는 짐승들(5~12절)
나귀와 소는 사람들이 가축으로 길들여 여러 용도로 활용하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들나귀(5〜8절)와 들소(9〜12절)를 말씀하시며, 그것들이 사람의 돌봄 없이 살 뿐 아니라, 사람이 그것들을 길들일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밝히십니다. 사람은 ‘왜 하나님은 들나귀의 빠른 발걸음을 사람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을까? 들소의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셨을까?’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들나귀와 들소가 그 능력을 허비하는 것 같지만, 그들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은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셨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혜가 없음에도 살아가는 타조(13~18절)
사람의 눈에 보기에 타조는 정말 이상한 동물입니다. 깃털과 날개가 있지만, 학과 같이 날지 못하고, 다른 새처럼 둥지를 틀어 알을 품지도 않으며, 그 알을 제대로 보호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새들처럼 새끼들에게 먹이를 갖다 주는 수고도 하지 않습니다(13〜16절). 즉 새임에도 불구하고 새의 특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점투성이의 동물입니다. 타조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이 타조에게 지혜를 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17절). 그러나 타조는 나름대로 생활방식이 있고, 달려가는 힘은 말 못지않을 정도로 강합니다(18절). 사람의 기준과 생각으로만 보면 타조는 하나님의 실수, 실패작인 것만 같지만 사실 타조 역시 하나님의 크신 창조의 섭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용맹하고 지혜로운 짐승들(19~30절)
하나님은 계속 사람보다 더 강한 힘과 지혜를 가진 동물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우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갖게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은 사람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용사보다 더 용맹할 뿐 아니라 전쟁에서 지휘관들의 명령까지 잘 따릅니다(19〜25절). 또한 고대사회의 통치자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먼저 내다보는, 즉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매와 독수리는 사람보다 훨씬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고, 낭떠러지에 집을 지을 정도의 기술력도 갖추고 있습니다(26〜30절).
사람은 왜 하나님이 사람에게는 말의 힘이나 매의 시야를 주지 않으셨냐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계획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며 동물들의 구조는 완전하지 않고 부조리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세상을 인간의 머릿속에 있는 ‘완전함’의 기준에 맞춰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들나귀와 들소의 힘이 낭비되고, 새로서의 존재 가치가 의심되는 타조는 나름대로 잘 살며, 말과 독수리가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서도 사람의 통치 아래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판단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