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8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11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16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약하게 하시며 전능자가 나를 두렵게 하셨나니
17 이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어둠 때문이나 흑암이 내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 아니로다
엘리바스의 발언이 끝나자 욥은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더 이상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고, 위로는커녕 비난만 하는 친구들에게 더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이제 하나님께 자신의 감정을 토로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1~9절)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원망과 탄식을 버리라고 계속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엘리바스의 권면이 끝나자마자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절). 원어의 의미는 “내가 혹독히 원망한다”입니다. 욥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은 그가 당하는 재앙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하고 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해 답답해합니다. 욥은 하나님께 직접 질문하고 답을 듣고 싶어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말을 물리치지 않고 들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피하고 계시고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고 느껴지기에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의 탄식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랑을 도무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확인할 수 있어야 탄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는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확인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 안에 원망과 탄식이 끝납니다.
욥의 두려움(10~17절)
욥은 자신이 무죄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를 알아주시는지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해 보시길 바랐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무죄가 입증되어 자신이 순금과도 같이 정결한 상태임을 하나님이 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욥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고, 어느 누구도 반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획하신 바가 욥이 패망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가 두려워하는 큰 이유였습니다.
욥처럼 자신이 살아온 걸음걸음에 대해 확신을 가질 만큼 의로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욥조차 하나님의 뜻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뜻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는 말씀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구원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욥이 신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면서도 탄식과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찾아도 만날 수 없다는 것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는 욥이 가졌던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우리의 구원이며 생명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이름을 당당하게 선포하고 전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