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지위를 잃고 교회로 대체되었는가?”를 다루는 단락(1310〜14:35)의 마지막 본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당연히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을 테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처럼 그냥 머물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안일하게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25~27절)
배경이 바뀌어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25절). 예수님은 무리에게 ‘내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공관복음에서 ‘무리’는 ‘제자’와 대조되는 대상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제자라고 불릴 수 없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습니다. 자기 가족과 생명까지라도 ‘미워하지 않으면’ 즉 포기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26절). 예수님은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27절). 이는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죽기를 갈망하지 않으면 제자라고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모태 신앙인이라고 해서, 주일성수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신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비용을 계산하라(28~33절)
예수님은 이어 제자의 길을 망대 공사(28〜30절)와 전쟁(31〜32절)에 비유하십니다. 제자의 길을 가려면 먼저 필요한 비용을 잘 계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감당하기 어렵다고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한번 해 보지’라는 식으로 나서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교에서는 이런 태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대인은 태어난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굳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가 망한 이유입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얻기 위해 자신의 소유를 버릴 각오까지 하는 것입니다(33절). 신앙을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수단이나 원래부터 소유하던 것 정도로 여겨 그것을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전심전력하라(34~35절)
이 말씀은 해석이 어렵지만, ‘소금’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 제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맛을 잃으면’에 해당하는 ‘모라이노’의 본래 뜻은 ‘어리석게 되다’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지만 ‘짓다 만 망대’처럼 적당히 신앙 생활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바로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며 나서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결국, 쓸데가 없어 내버려지게 됩니다. 주님을 섬기려면 확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주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양다리 걸친’ 신앙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여가생활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놀이가 아니라 목숨 건 싸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더 치열한 싸움입니다. 치열하게 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살아가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도 저도 못 하고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전심전력을 다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할 때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고, 복된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