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14 하물며 내가 감히 대답하겠으며 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
15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 나를 심판하실 그에게 간구할 뿐이며
16 가령 내가 그를 부르므로 그가 내게 대답하셨을지라도 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
17 그가 폭풍으로 나를 치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깊게 하시며
18 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19 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20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21 나는 온전하다마는 내가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내 생명을 천히 여기는구나
22 일이 다 같은 것이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하나님이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시키신다 하나니
23 갑자기 재난이 닥쳐 죽을지라도 무죄한 자의 절망도 그가 비웃으시리라
24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갔고 재판관의 얼굴도 가려졌나니 그렇게 되게 한 이가 그가 아니시면 누구냐
에스더, 다니엘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의인이 악인을 이기는 통쾌한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 악인에 대한 진노는 약한 자들에게 소망이 됩니다. 그런데 욥기에서는 이것이 뒤집혀 버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되던 이 모든 말이 욥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과 멀리 계시고, 자신은 그분과 소통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다(11-18절)
욥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 무력감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욥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모두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때 사용되는 표현들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조차 없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 앞으로 지나가시고 움직이신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세 앞에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는 장면으로(11절; 출 33:19-23), 하나님의 영광을 연상시키는 대표적 표현입니다. 하지만 욥은 그 영광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다며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욥은 고대 근동 신화에서 창조신들의 가장 큰 라이벌로 인식되었던 라합 세력도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저항할 수가 없다고 고백합니다(13절). 이는 전통적으로, 연약한 자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바랄 때 많이 사용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욥에게는 이 모든 것이 다 절망적입니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근원지가 하나님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17-18절). 욥은 자기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항변할 수 없고, 그분이 자기 기도를 들으셨다고 확신할 수도 없음을 탄식합니다(15-16절). 욥의 탄식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에 의문을 일으킵니다. 욥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당연히 사용했던 언어들이 과연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으시다(19-24절)
앞에서 욥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할 수 없다고 탄식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무슨 관심이 있으시겠느냐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욥은 역시 하나님을 찬양하는 언어로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하시고, 가장 높은 심판자이시기에 인간이 아무리 온전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19-20절). 이 사실이 욥에게는 절망의 원인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생명을 바쳐 온전하려 노력했더라도, 온전한 자나 악한 자나 멸망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21-22절). 온전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하나님은 별 관심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하나님께는 벌레만도 못한 존재이니 인간의 노력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입니다. 욥은 의인이 사고로 죽음을 맞는 이유도,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도 하나님이 세상을 내버려 두시기 때문이 아니냐며 탄식을 이어 갑니다(23-24절). 사실 욥의 말은 신앙에 의심을 품고 교회를 떠났거나 신앙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면 ‘믿음이 없다’며 혀를 차지만, 놀랍게도 하나님은 욥기를 성경에 포함시키셨고,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을‘의인’으로 분류하여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의 사정과 마음을 헤아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욥을 통해 우리는 자기가 제어할 수 없는 이유로 고통당하는 사람의 말을 들어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듣자마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태도를 갖기보다, 오히려 저들이 하나님을 멀리 느끼는 현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게 느끼며 인생의 고통을 토로하는 자들을 먼저 용납하고 축복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