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말라기는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언약을 지키고 계신다”고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마치 부모가 과자를 사주면 자기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이면 자기를 미워한다고 느끼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것 같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1~2a절)
말라기서는 당시의 근본적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포로기가 끝나고,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으로 돌아온 백성은 대부분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앗수르에게 멸망한 북이스라엘 지파들은 거의 명맥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라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경고하신다고 선포합니다(1절). 하나님은 분열되어 흩어지기 전의 이스라엘을 보시듯이 포로기를 마친 유다 백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아직 바사(페르시아)의 속국인 상태로 머물러 있고, 다윗 왕조가 재건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실현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 때문에 낙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2a절). 그러나 우리는 유다가 비록 약했지만 일상을 유지할 수 있었고, 율법을 배우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이유는 그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는 기억하지 않은 채 현실에 매몰되어 낙심한다면 삶에서 어떠한 기쁨이나 가치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증거(2b~5절)
말라기 선지자는 유다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신앙적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일관된 사랑의 증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말라기는 에서와 야곱 이야기와 에돔이 당한 일을 언급합니다(2b〜3절). 정확한 시기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에돔은 ‘산들이 황폐하고 산업이 이리들에게 넘겨지는’ 일을 당했습니다. 에돔의 주 거점은 현재의 요르단 페트라 요새였는데, BC 6세기 혹은 5세기에 나바트인들에 의해 그 요새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에 비해 유다는 비록 여전히 바사의 속국이었지만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사실 에돔은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할 때 바벨론을 도와 유다 땅을 수탈했던 나라입니다. 말라기는 무너진 에돔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 예언하면서(4절), 에돔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유다에게 행한 에돔의 악행을 갚으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에서가 아닌 야곱을 선택하신 이후로 한 번도 에돔을 이스라엘 보다 높이시거나 사랑하신 적이 없는 것을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 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지금 회복해야 하는 것은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주어진 일을 하고 밤에 잠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우리도 평범한 일상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인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나는 왜 가진 것이 적을까?’, ‘나는 왜 저런 재능이 없나’ 등의 불평을 되뇌일 때가 많습니다. ‘현상 유지’ 자체가 이미 큰 감사 제목이기에 신앙의 선진들은 ‘범사에 감사하기’를 실천해 왔습니다.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기를 잊지 마십시오.